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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5.29 군대에서 선임한테 개털린 썰.
상식2018. 5. 29. 20:05

난 12월 군번이었다. 정확히는 12월 27일,, 훈련소는 다 같은 동기기에 그냥 훈련에만 열중하면 무난하게 마칠 수 있다. 나도 무난하게 훈련소를 퇴소하고, 자대로 갔다.  내가 2월 3일 금요일에 자대를 갔는데, 2월6일 부터 혹한기를 시작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티는 내지 못했지만, 심적으로 충격이었다. 분명 훈련소에서 혹한기를 이미 다 했을거라는 생각을 했기에 더 낙담을 했다. 하지만 아직 나를 포함한 동기 3명은 자대입소를 하고 정말 샛병아리이기 떄문에 혹한기 훈련은 제외가 될 것 같다는 선임들의 이야기를 엿들었고, 선임들도 확실하게 모르니 중대장이나, 소대장한테 막 묻는것을 보고 보통 같으면 가지 않는구나,, 그렇다면 나도 가지 않겠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당시 여자중대장이 었는데, 중대 인원이 부족하다고 대리고 가야 한다는것이다. 이 중대장은 군생활을 하다보니 느낀게 앞뒤가 꽉 막힌 중대장이다. 그래서 우리를 훈련에 대려간것 같다.

 

혹한기 전날, 우리의 분대가 정해지지도 않고, 총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임시로 정해진 분대가 있었고, 그리고 그 분대의 임시 맞선임은 혹한기는 춥고 배고프니, 먹을 부식들과, 핫팩을 잔뜩 준비해야 한다고 했고, 같이 px를 가서 많이 사왔다. 그런데 그날 점오 시간에 분대장이 누가 니네 맘대로 이런거 사오랬냐고 하면서 개 털렸고,  가져갔다가 개털릴까봐 가져 가지 못했다. 이때부터 나의 고난은 시작이 된 것 같다.

 

다음날 아침 훈련은 시작 되었다. 2달동안 추위에 떨다 왔는데 오자마자 혹한기라니.. 그것도 선임들은 깔깔이 위아래 다입었는데 나는 못입었다. 너무너무 추웠다. 확실하게 분대가 정해진것도 아니라서 누가 챙겨주지도 않았고, 챙겨줄 이유도 없었다.  일단 내 위치상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정말 너무너무 힘들고, 배고팠다. 2째날이었다. 아침에 하사한명이랑, 상병들이 이상한 분위를 만들었다. 가스조절기 였나? 그거 잊어버린 사람들을 저격하면서 욕이란 욕은 다하고,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나도 그 중 한명이었다. 지내 딴에는 교육이나, 군기 확립이겠지만, 어이가 없는게 자는 사이에 지내가 빼가 놓고서 왜 총을 안껴안고 잤냐고 총은 니 애인인거 모르냐면서 가스조절기 없는애들을 정말 개처럼 갈구었다. 훈련소에서 배운다는데 나는 못배웠다. 너무너무 억울했다. 여기서 나는 부대원 80명중 2명이었으니 엄청난 주목과, 관심을 받았다. 물론 폐급으로... 폐급이라 하면 사회에서의 문제아 정도로 생각하면 될것이다. 

 

나는 그런 안좋은 인식이 나에게 박혔다는게 정말 힘들었다. 혹한기는 정말 추웠다, 그런데 추위보다 힘든게 심리적인 압박이었지 않나 싶다. 추우면 뛰면 열이나는데 심리적인것은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오로지 시간이 지나야 하는것이 었다. 아니면 특별한 계기를 마련하던지...

 

혹한기를 어렵사리 마치고 자대로 복귀 했다. 정말 힘들었고, 정말 무서웠고, 정말 추웠고, 정말 괴로웠다.

 

자대에서 확실하게 분대가 정해지고 내 맞선임이 정해졌다. 복귀 다음날 어떤 선임이 김상수 상병에게 어떤말을 전달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군대 용어들이 아직 너무 낮설었고, 각 계급과 모든것이 낮설었기에 여기서 또 실수를 하고 만다. 압존법을 무시하고 김상수 상병인지, 병장인지 순간 헷갈리고 당황해서 김상수라고 하고 뒤에 계급은 얼버무렸더니 김상수 상병은 그냥 김상수라고 만 들렸던것 같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개 폐급으로 전락하고, 이제는 더 이상 헤어나올 곳이 없는것 같았다. 또 한가지는 내가 찾아가서 실수한 사람이 김상수 상병이 아니었다는것이다. 나는 김상수 상병과 닮은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김상수 상병이 아니라 얼굴이 비슷한, 다른 사람한테 간것이다. 여기서 또 한번 이야기 거리가 생성이 된것이다.

 

어떻게 보면 실수 할 부분일 수 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이미 거의 고문관 수준으로 낙인이 되어 내가 하는것은 실수건 뭐건 내가 고문관이라는것을 증명하는것 과 같았을 것이다. 나는 정말 울지는 않았지만, 살면서 몇 안되는 정말 힘들었던 기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순간에 선임들의 이쁨을 독차지 하게 되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게 맞다. 어느 주말 오후였다. 나는 선임을 따라 px를 가서 음식을 먹고 있는데, 2달 선임이 오더니 축구할 사람이 필요하다는것이다.  중대별 축구를 하는데 인원이 부족해서 급하게 구하고 있었다. 나는 사회에서 축구를 정말 좋아했다. 나는 내 상황이 말이 아니니 내가 잘할 수 있는 축구라고 해야 될것 같았고, 또 군대축구를 익히 들어서 한번 해보고 싶었다. 나로서는 그 기회가 다소 빨리 찾아온것 같다.

 

 나는 음식을 먹다 말고 그대로 축구를 하러 갔다. 여기서도 실수 하거나, 못하면 정말 회생이 불가함을 잘 알고 있었다. 내 머릿속뿐 아니라, 내 몸도 잘 인지 하고 있었던것 같다. 내가 그때 보여준 플레이는 정말로 대단했다. 이것은 절대 과장해서 말하는게 아니다. 그렇기에 선임들이 볼때는 아마  내가 생각한 것 보다 더 잘 해보였을 것이다. 내가 태어나서 가장 멋진 축구를 선보였던것 같다. 상대의 에이스가 내 위치 공격수 였는데, 내가 윙빽으로서 그 사람을 봉쇄하고, 엄청난 경기 전개와, 개인기를 선보였고, 정말 어디서 그런 실력과 힘이난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때는 활동화라고 운동화가 있는데 그게 흙 바닥에서는 엄청 미끄럽다. 그런데도 그때는 미끄러짐도 없이 정말 완벽한 플레이를 했다. 이때가 가장 잘했고, 군대 생활을 할 수록 실력은 반감이 되었다. 정말 정신력이라는게 중요한것 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던것 같다. 그리고 정말 한줄기 빛이 내게 비춰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경기 후 나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사람 인식이 변하는게 한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부터는 내가 뭘 조금 못해도 괜찮고, 이해가 되는 그런 상황으로 완전히 변했다. 나는 이때부터 맞선임이나, 부분대장이 나에게 군가등 교육을 해야 하고, 청소, 빨래등의 개인정비 시간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하러 나갔다. 축구 하는 사람들이 중대의 실세들이었기에 나는 부담없이 축구를 할 수 있었고, 아무도 뭐라고 못했다. 대신 공부할것은 그 외 시간을 마련해야 했어야 했다. 그래도 나는 너무 행복했다. 심리적인 압박이 이제는 행복으로 바뀌어 간것 같았다.

 

물론 축구만 열심히 한것은 아니고 다른것들도 열심히 했다. 잘하지는 못해도, 열심히 했다. 축구만 했으면 장기적으로는 나중에 더 안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 을 알고 있었기에 말이다. 그리고 한참 뒤에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내가 보급병이였는데, 어떤 2달 선임이 내가 자기  창고에 절대 오지 않았으면 했다고 한다. 그만큼 내 인식이 안좋았고, 난 정말 고문관이라는 것이 이미 나랑 얽힘이 있든 없든 모든 중대원에게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결론은 군대에서 해야 될때는 열심히 하자.

 

 

 

 

Posted by 잠브로19